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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문자 추정 3500년 전 토기 글자 발견

by hainya1004 202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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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나안 문자에 글자 발견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관련 내용은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Antiquity)에 15일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2018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라키시. 기원전 3천 년 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적이 있고 기원전 1천500년 경에는 유대 왕국 이전의 가나안 문화가 번성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곳을 발굴하던 오스트리아 발굴팀은 세로 4㎝, 가로 3.5㎝의 작은 토기 파편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토기 파편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문자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인근 지역에서 사용되던 상형문자나 설형문자에 가까운 원시 가나안 문자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연대 측정 결과 이 토기는 후기 청동기가 시작된 기원전 1천45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대측정 결과를 토대로 토기에 적힌 문자가 알파벳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에 해당하는 원시 가나안 문자일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의 펠릭스 호플마이어 연구원은 15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이 문자는 이집트와 시나이반도에서 발견된 글자들과 이후 가나안에서 발견된 문자들과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제공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 이 원시 가나안 글자들은 이후 철기시대 레반트(현재의 팔레스타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지역) 사람들의 문자 체계로 발전했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를 이용해 히브리어 성서를 기록했으며, 페니키아 버전의 문자는 상인들을 통해 지중해 인근 국가인 그리스와 로마로 퍼져나가 결국 현재의 라틴어 알파벳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는 추정했습니다.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음소 문자는 이집트 서부 사막의 바위에서 발견된 낙서와 시나이반도 남부의 고대 이집트 옥 광산에서 발견된 것들로, 연대는 대략 기원전 19∼18세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원시 가나안 문자들이 약 4천 년 전부터 이집트에 거주한 가나안의 일꾼들이나 노예들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집트의 복잡한 그림문자를 몰랐던 이들은 그들이 사용하던 셈족 언어의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상형문자를 빌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초기 음소문자가 이집트에서 가나안 지역으로 퍼져나간 시기는 대략 기원전 12∼13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원시 시나이 문자가 쓰였던 시기와는 대략 50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토기 파편에 쓰인 글자의 연대나 언어학적 의미가 대략 추정됐지만, 이 글자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내기는 더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기록된 문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서 연구를 하는 학자들 사이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이 있다면 바로, 최대주의자(biblical maximalist -일반적으로 성서 네러티브 자체를 역사 전개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으며, 성서 택스트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즉 외적 증거를 통해 수정이나 재해석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택스트 자체의 기록을 인정하려 합니다.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성서 택스트와의 대립이 있을 경우, 택스트의 수정 혹은 재해석을 한다)와 최소주의자 (biblical minimalist - 성서의 해석을 고고학적 발견에 의존한다, 고고학적 발견과 일치할 경우 성서 네러티브를 인정한다) 사이의 논쟁입니다. 특히 최소주의자들은  다윗 왕조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과장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다윗 시대의 고고학적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에 이스라엘 왕조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한 과정 혹은 허구의 산물이 바로 다윗 왕조라는 주장을 합니다. 
최근, 벧세메스 근처, 엘라 골짜기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있었던 현장 - 고대 이스라엘 왕조 당시 산지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쉐펠라 지역 아래 평야에 거주하던 블레셋의 경계선)가 내려다 보이는 히르벳 케이야파 (Hirbet Qeiyafa)에서 고고학 유적 발굴을 주도하던 요시 가르핀켈 박사 (히브리대 고고학자)는 3,000년 된 원시 가나안 문자 (Proto-Canaanite Characters)로 기록된 히브리 비문을 발견했다고 발굴 보고를 하였습니다. 발견된 토기 조각은 5줄로 된 글로, 요새화 된 성터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구약성서, 특히 다윗 시대 강력한 이스라엘 왕조가 존재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가르핀켈은 주장합니다. 
발굴 조사에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십 대 청소년에 의해 발견된 토기 조각은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로, 히브리어 알파벳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원시 가나안 문자로 된 다섯 줄의 글입니다. 

카본 14 분석에 의하면 발견물의 연대는 대략 주전 1,000년에서 975년 사이로 성서 택스트에 나오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다윗 왕조의 황금기와 동일 시대의 것입니다. 
학자들은 주전 10세기 경의 문자들과 문자들과 동일한 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가르핀켈은 이보다 100년에서 200년 사이 정도 더 오래된 것으로 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히브리어 택스트는 사해사본으로 850년 후에 양피지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미 고대 언어학자들이 토기 조각 해석을 시작하였는데, 해석된 몇몇 단어들 중에는 "심판하다", 종" 그리고 "왕"이라는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시-가나안 문자는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고유 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택스트 자체는 히브리어이지만 당시 사회적으로 사용되던 구어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가르핀켈은 조각에 새겨진 "to do" (---을 하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하던 것임을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한편, 히브리대의 아미하이 마자르 교수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합니다. 마자르에 의하면, 발견된 토기 비문 자체는 매우 중요하고 가장 긴 원시 가나안 문서 조각임을 인정하지만, 기록된 비문 자체와 당시 통용되던 언어 사이의 시기 문제를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가르피켄의 주장이 옳다면, 이는 매우 고무적이 발견으로서 성서의 사건이 그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며 수백 년이 지나면서 그 실제 역사가 구약성서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발견된 텔 (히르벳 케이야파 - 30 걸음 정도의 넓은 성문과 요새, 그리고 700 미터나 되는 성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르 일란 대학의 아렌 마이에르 교수 (히르벳 케이야파에서 가까운 "가드" 지역 발굴)는 블레셋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은 돼지와 개 뼈들이 발견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들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 뼈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히르벳 키야파의 지속적인 발굴을 통해 어떤 백성들이 거주하였는지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동시에 어쩌면 히르벳 케이야파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블레셋 사람들이 아닌 이름 모를 제3의 백성들이 거주하였을 수도 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히르벳 케이야파는 고대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의 힘겨루기를 하는 쉐펠라 지역으로 어쩌면, 이번 발견과 앞으로 진행될 발굴 조사가 이스라엘 왕조, 특히 다윗 시대의 정치적 군사적 세력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1. 원시 가나안 문제 알파벳

2. 페니키아 문자 알파벳

3. 원시 - 히브리어 알파벳 

4. 사마리아 문자 알파벳 

5.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 (케타브 아슈리트) 


6. 현대 히브리어 알파벳 (필기체)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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